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일본원정 (문단 편집) == 폭풍우가 없었다면 과연 원정은 성공했는가? == 1차 침공 당시 연합군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하카다의 일본군을 쫓아냈고, 공세가 계속된다면 다자이후마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졸장 원군 사령관 힌두의 결정으로 공세를 포기한 채 배로 철수했고, 결과는 결국 재앙으로 끝났다. 만약 이때 김방경의 말대로 공격을 계속했다면 다자이후는 연합군에게 함락되었을 것이며, 적어도 북규슈 정복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북규슈를 정복했다 해도 규슈 전역, 나아가 일본 전역을 정복하고 막부를 전복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규슈 섬을 정복하고 고케닌들과 백성들의 저항을 진압하는 데 연합군은 상당한 병력을 소모해야 했을 것이며, 여기서 세토내해를 건너 [[혼슈]]를 공략하려면 더욱 복잡한 준비를 거쳐야 한다. 설사 어찌저찌하여 줄어든 병력을 이끌고 혼슈 섬에 상륙했다고 해도 규슈 섬 때와는 차원이 다른 저항을 마주해야 하는데 이를 모두 뚫고 [[가마쿠라]]까지 진격할 수 있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2차 원정의 경우, 태풍이 불지 않았다 해도 난이도는 한층 어려워졌을 것이다. 이때 막부는 1차 침략을 교훈삼아 '''하카다에 20km에 달하는 장벽을 쌓았으며, 이전보다 훨씬 많은 4만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실제로 이 장벽과 고케닌들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여몽연합군은 제대로 상륙조차 하지 못했으며, 강남군과 합류하기 위해 철수했을 때도 일본군 선박들의 기습에 시달리며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몽골의 침략-몽골의 거대원정군에 맞서 싸운 가마쿠라 무사단>에 의하면 2차 침공 때 막부가 일본 서부에 배치한 병력은 규슈에 4만 명, 주코쿠에 2만 명, 쿄토에 6만 명이었다고 한다. 이때가 중세이고 당시 일본군이 중세 봉건적 기사의 형태를 취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전력이다. 이 정도 방비라면 [[규슈]]를 정복하는 일만으로도 상당한 출혈을 강요했을 것이며 일본 본토 서부에 진격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문단주제에서 조금 벗어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의외로 몽골 제국/ 원나라가 정복한 국가들을 보면 일본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중국에서만 해도 [[송나라]]와 [[금나라]]의 경우 물론 세계 최강국이었고 당연히 일본보다는 훨씬 강력했으나 몽골군의 주력 수십만 명을 수십년간 때려 박고 나서야 겨우 정복했다. [[호라즘 왕조|호라즘 왕국]]은 인구와 영토는 많아도 정치시스템이 잘 갖춰져있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무함마드 2세와 어머니 간에 내분이 일어나 내부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애초에 호라즘은 호라즘 지방을 기반으로 한 튀르크계 부족들이 다른 부족들을 정복하고 세운 연맹체에 가까워서 왕국 내에 있는 부족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오거나 심지어 몽골군에 붙는 일도 흔했다. 덤으로 이제 막 영토를 넓힌 참이었기에 넓은 영토를 제대로 살리기도 어려웠다. 러시아는 마찬가지로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았지만, 이쪽은 아예 통일조차 안된 채 수십 개의 공국들로 분할되어 있었고 각 공국들 간의 연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손쉬운 각개격파가 가능했다. 그나마 [[서하]]와 [[고려]] 정도가 일본과 비슷한 급이라고 보는데, 고려는 한국인이라면 알겠지만 '''내부 사정이 일본 이상으로 막장이었다.''' 일단 지형상으로도 불리했고 기나긴 무신정권의 뻘짓과 최충헌의 자기 위신을 위한 기존 군대 약화 및 사병 병설로 인해 군사력과 행정력이 심각하게 약화된 상태였다.[* 이 정도면 분열되긴 했어도 외적의 침공 앞에서는 똘똘 뭉칠 줄 알았던 일본이 더 나아보일 지경이고 실제로도 이 전쟁으로 [[가마쿠라 막부]]와 [[호조씨]]는 쇠락의 길을 걸었으니 충분히 할 만큼 했다.] 반면 일본은 인구가 최소 600~700만에 달해 당시 중세 기준으로는 상당한 사이즈의 국가였고,[* 서양 학계에서는 이를 고려의 두 배 정도로 파악한다.] 섬이라는 지형적 이점이 있었다. 단순히 섬이라서가 아니다. 일본 열도, 특히 혼슈는 북고남저 지형으로 [[동해]]를 마주한 일본 북단은 평야가 거의 없고 대부분 가파른 산지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북단에서 상륙작전을 해봐야 남부의 평야지대에 몰려있는 주요 도시를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북에서 남으로 내려와서 일본 열도에 상륙할 길이 규슈밖에 없다. 문제는 규슈에 상륙한다고 해도 점령도 힘들고, 규슈에서 동진해 교토까지 가기 위해서는 좁은 길을 따라 진군해야하는데 당연히 뚫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원군의 최대 강점은 대규모 기병을 이용한 기동력인데, 일본은 그 지역의 특성상 군마를 대규모로 운송할 수 없었으며, '''이는 원나라의 최대 강점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했다.''' 봉건국가이긴 했지만 분열상이 호라즘, 서요,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같은 동네들에 비하면 훨씬 양호했고 가마쿠라 막부의 싯켄을 중심으로 한 단일화된 국가체계와 천황을 중심으로 한 동족의식을 갖추고 있어 조직적이고 단일화된 저항이 가능했다. 실제로 가마쿠라 막부의 쇠망 원인을 이때 너무 열심히 전쟁 준비를 한 탓이라고 보는 사견이 있을 정도로 당시 일본은 일종의 총력전을 준비했고, 모든 고케닌들이 군사를 뽑아내고 전쟁준비에 심혈을 기울였을 정도이니 더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원정군이 장기전이 과연 가능했냐'''는 것. 보급의 경우 고려에 크게 의존해야 하고 고려는 등골이 휘는데 십만이 넘는 대병력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백년전쟁]]의 [[영국군]]처럼 보급이 부족해 아무 곳이나 약탈하다 도리어 원정군이 민심을 잃고 일본군이 게릴라나 지연전으로 몰고 가면 일본은 바다 건너 세력이라 원군조차 보내기 힘들며 그곳은 그들의 홈그라운드이니 답이 없다.[* 백년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흔히 잉글랜드가 대승한 전투탓에 잉글랜드에게 털리기만 했던 프랑스라는 인식이 있는데 실상은 잉글랜드에 너무나 괴로운 전쟁이었다. 태초의 국력도 프랑스가 2,3배 가량이라 잉글랜드가 약탈로 깔짝댄다고 해도 프랑스 왕권의 타격은 미약했으며 잉글랜드가 정규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후에야 전쟁으로서 확전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압도적인 승리 후 잉글랜드의 정치적 굴복이 늦어져 대내외적 상황으로 후퇴하면 프랑스는 금방 전쟁때의 피해와 불이익을 회복해버렸고 잔다르크가 반대로 연이어 대승리를 거두자 빈손으로 전쟁을 끝내야 했다.] 이는 '원사'(元史)에도 지적하는데 "일본은 바다가 멀고 사람이 많고 땅이 넓으며 사방에 병사가 모인다. 아군의 원군은 없고 만일 불리해져도 지원을 보내기 힘들다."고 일본 정복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元史』巻一百六十八 列傳第五十五 劉宣「況日本海洋萬里、疆土濶遠、非二國可比、今次出帥、動衆履險、縱不遇風、可到彼岸、倭國地広、徒衆猥多、彼兵四集、我帥無援、万一不利、欲發救兵、其能飛渡耶、隋伐高麗、三次大擧、數見敗北、喪師百万、唐太宗以英武自負、親征高麗、雖取數城而還、徒增追悔、且高麗平壤諸城、皆居陸地、去中原不遠、以二國之衆加之、尚不能克、况日本僻在海隅、與中国相懸萬里哉、帝嘉納其言] 쓰시마나 이키 섬의 장렬한 전투의 예를 보면 오히려 극렬한 저항에 질색하며 떠났을 가능성이 더 크다. 애초에 전쟁은 잘 싸운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가능성이 높았다, 장기전을 하면 이긴다'고 태풍만 없었으면 확정적으로 이겼을 거라 주장했지만 '''여몽전쟁조차도 아홉 차례의 원정 끝에 겨우 항복을 받아냈다'''. 고려 무신정권도 그리했는데 호죠 가문은 안 그러했겠는가? 고려는 그럴수록 더더욱 빈곤해질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몽골은 당시 일본보다도 멀리 있고 훨씬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나라들을 전부 복속 시킨 전력이 있다. 과연 원이 일본을 점령하는 것이 원나라가 일본을 점령하는데 얼마나 힘을 쏟을 것인가에 따라 달라졌을 것인가? 남송 등의 강대국을 꺾은 원이니만큼 일본이 버티지 못할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첫째로 원의 여력이다. 극소수의 인구로 드넓은 영토를 통치하는 특성상 일본까지 정벌할 여력이 남았는지가 중요한데 그것이 의문스럽다. 상술되었듯이 일본은 생각보다 중세 기준으로 일반적인 전력도 만만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쟁대비까지 사력을 다해서 하고 있었으며 각 지방세력의 저항의지도 의외로 꽤 강했다. 그리고 일본이 섬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정복되었겠지만 현실은 일본이 섬, 그것도 열도 국가라는 것이다. 강화도조차 제대로 점령못해서 빌빌대던 원이 아무리 남송과 고려의 도움을 얻는다 해도 다시 더 멀리 바다를 건너서 일본을 점령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현대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원 입장에서 일본은 현대인의 체감이나 생각보다는 드럽게 멀다는 것이다. 현대야 워낙 선박과 항해술이 발달하고 비행기까지 있으니 직선거리로 쭉 달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모든 물자와 군사를 남쪽에서부터 끌어올려 북경에 모은 다음, 다시 그걸 요서를 지나 요하를 건너 요동반도를 삥삥 돌아 압록강을 건너고, 3000리길을 남북으로 지나가서 경상남도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원 입장에서는 그제서야 배를 타고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토까지? 규슈에 닿은 이후 끝이 아니라 다시 동쪽으로 직선거리만 해도 수백킬로미터를 길게 가야 한다. 그리고 문서에서 언급됐듯이 일본은 주로 북쪽에 산이 있고 남쪽에 도시가 있다. 원 입장에서는 익숙치도 않은 배를 타고 상륙한 이후 다시 산 넘고 물 건너야 된다. 규슈를 정복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어쨌건 규슈를 일단은 대충 정복했다 치면 그 다음 혼슈로 향하는 원나라의 진격로는 어떻게 되는가? 일본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바닷길도 좁아터졌고 육지길도 좁아터졌다. 즉 행군로가 뻔하게 한정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이유는 앞서 말했던 일본의 산과 강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기습당하기 딱 좋다는 것이다. 즉 원 입장에서의 보급로는 일단 규슈까지 닿는 것만 해도 당시의 불안한 항해기술을 믿고 남송지역에서 바닷길로 바로 규슈로 뿌리던지, 아니면 어떻게든 고려를 거쳐서 보다 더 안전한 보급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규슈에 닿은 이후에도 좁고 뻔한 보급로를 길게 유지해줘야 한다. 제아무리 천하의 원나라라도 그것이 쉽게 가능할까? 혼슈에서만 원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섬이 불침항모라는 현대의 전쟁격언에 따르면, 혹시 시코쿠에서 뛰쳐나와서 보급을 방해하는 무리가 있다면 어떨까? 그래도 어찌어찌 당대의 강대국들을 때려눕힌 원나라답게 교토까지 도착했다고 하자. 근데 일본이 한국이 역사상 자주 그랬던 것처럼 개비기를 시전한다면? 독한 맘 먹고 청야전술을 쓴다면? 수도 버리고 그냥 동쪽으로 하염없이 튀어버린다면? 이러면 사실상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려처럼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말타고 맘대로 쓸다가 퇴각하는 것도 안 된다. 혼슈에서 규슈로 퇴각할 때도 위험하고 규슈에서 다시 고려까지 퇴각할 때도 항상 위험하다. 몽골이 국가의 모든 활력을 남송 정복에 쏟아붇고 그 여파로 일찍 망해버렸다는 주장이 있듯이, 몽골이 얼만큼 일본 정복에 열의를 보였나가 중요하다는건데 쿠빌라이 칸 죽음 이후로 원정은 완전히 중단된다. 전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나 명분, 지형과 동맹이 아니라 전쟁수행의지이다.[* 명분은 전쟁수행의지와 큰 상관관계에 있긴 하다.] 강력한 무기들을 잔뜩 가지고도 싸울 의지가 전혀 없는 군대라면 빈곤한 무장의 반군 상대로도 나라가 넘어간다. 결국 몽골은 일본 원정을 시도했으나 실패를 맛본 후 손을 털었고, 일본은 두 차례의 침공을 총력전에 가까운 준비와 저항으로 결사항전을 벌였다는 점에서 몽골이 일본 열도를 모조리 정복하는 건 가능성이 낮다. 일본이 의지가 없다면 어찌어찌 할 수 있었겠지만, 일본의 강한 전쟁의지를 봤을 때 원나라가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유럽을 먹었으면 사실 중국을 먹은 것과 다름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을 못 먹은 사례들이 있듯이, 폭풍이 몰아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이 가정을 극단적으로 하면 그냥 보급도 공세도 남경에서 바로 출발해서 바닷길로 규슈까지 가면 되기 때문에 상당히 쉬워지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섬을 정복하는 것은 어렵다.[* 영국과 일본의 사례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나마 동쪽과 남쪽이 평지라 상륙도 쉽고 중심지인 남쪽 영토가 길게 유럽대륙에 닿아 있는 영국과 달리 일본은 동서로 길게 뻗은 열도라 국력이나 해군이 강하고 약하고 하는 것과는 별개로 최소한 자연지형적인 면에서는 일본 정벌이 훨씬 어렵다. 앞서 말했듯이 일본이 청야전술을 시전하거나 수도 버리고 튀기를 쓰면 답이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